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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그립지 않다고 거짓말하면서
그 거짓말로 나는 나를 지킨다
/ 천양희, 하루
흰색의 거짓말, 헌신적인, 되도록 무감정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부터 아이노 세츠나와 성격이 어느정도 겹치지만,
아래에 서술할 내용은 보쿠노 세카이가 세월이 흐르면서 독단적으로 쌓아온 성격이다.
| 흰색의 거짓말, 헌신적인 |
“...응, 나는 괜찮아. 세츠나는 이런 상황을 이겨낼 것이고, 세카이인 나도 이건 해야하잖아. 어쩔 수 없는 나의 운명이니까.”
여자는 그리 말하며 아무렇지 않게 웃어보였다.
의외로 솔직함과 거리가 멀었다. 세츠나가 종종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파고든다면, 세카이는 이에 있어서 조심스러웠다.
물론 그녀도 거짓말을 좋아하지는 않았다만, 상대를 위한 흰색의 거짓말이라면 해도 된다는 쪽.
종종 그것이 잘못 적용되어 자신에 대한 거짓말을 하게 만들 때가 있었다. 예를 들자면 지나치게 헌신적인 태도였다.
세츠나로 살아온지 어느덧 1년, 익숙하여도 여전히 힘든 일이었지만 남을 위해서라면 자신은 괜찮다고, 그리 웃으며 무리하였다.
속은 썩어가며 문드러지고 있음에도.
응, 그래도 나는 언제나 괜찮아.
점점 지쳐가도 나는 원래부터 세츠나와 츠바사의 소유인 걸.
| 되도록 무감정 |
“...이제는 감정을 갖는 것이 무서워. 눈물은 마음이 아파.”
본래 간호용 안드로이드로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환자의 임종에는 익숙해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
허나 밝게 미소짓던 세츠나의 모습이, 조잘조잘 웃음소리를 흘리던 그 목소리가 가슴 깊은 곳에 남아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아마 세츠나의 죽음이 확정됐을 때 안드로이드로서 흘릴 수 있던 눈물을 다 쏟아낸 것 같았다.
그 이후로 세카이는 그리 다짐했다.
누구에게도 정을 주지 않겠다고. 헌신을 하더라도 깔끔하게 사람을 떠나보낼 수 있도록.
그리 다짐하고 얼마 안 있어 정이 많은 세츠나로 살아가게 되었어도- 일단 자신은 세츠나로서 정을 주는 척 연기할 뿐,
실제로 세카이는 마음의 문을 꽉 닫아놓고 있었다.
있잖아, 세츠나.
나는 두번 다시 아이노 남매말고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자신없어.
| 말투 |
기본적으로 누구에게나 반말. 자신을 지칭할 때는 보통 ‘나(私)’라고 한다.
상대를 지칭할 때는 ‘당신(あなた)’ 혹은 이름으로 지칭. 세츠나보다는 정중하고 차분하다.
조금은 딱딱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세츠나로 지낼 때 유독 자신을 ‘세츠나’라 지칭한다.
세카이 입장에서는 제 3자인 세츠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세츠나가 생전에 자신을 자기 이름으로 지칭했던 것이 반영되기는 하였지만- 그녀는 ‘나’라는 호칭을 더 자주 썼다.
| 작동방식 |
부품이 망가지고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되어도 중심부에 존재하는 코어만 망가지지 않는다면 영생을 살아갈 수 있었다.
에너지 생산 방식은 주로 두가지인데, 걸어다니면서 햇빛을 맞고 이로 에너지 생성을 하거나 혹은 음식 섭취를 한다.
인간 같이 살게끔 츠바사가 조치해놓은 것. 한 번 에너지 충전을 하면 한 달은 거뜬히 버틸 수 있다.
강제종료 루트가 존재한다.
코어를 부수지 않는, 간단한 방법이었다.
코어 중앙 버튼에 자신의 손을 댄 다음에,
‘찰나의 세계는 이제 끝이야, 잘 자. (刹那の世界はもう終わりだよ, おやすみ。)’ 라 읊조리면 잠에 들 수 있었다.
이는 코어의 전원을 두번 다시는 되돌릴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럴 가능성은 적었지만 혹시 있을지도 모를 세카이의 폭주를 막기 위해서,
혹은 주변인들이 모두 죽고 세카이 혼자만 세상을 살아가게 될 때에 그녀에게 줄 수 있는 영원한 안식을 위해 만들었다.
다만 세카이는 모르고 츠바사만 알고 있다.
아무래도 츠바사는 여전히, 세카이가 살아가기를 바라고 자신이 죽기에는 한참 멀었기 때문이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자유로운 편이었다.
프로그래밍 역시 일반 사람과 같이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커지도록 되었다.
다만 후술할 사건으로 인해 지금은 세츠나로 살아가는 것이 임무가 되게끔 개조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세카이의 자아를 잃지는 않았다. 츠바사는 세카이를 온전히 없애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렇다고 해서 세카이는 세츠나로 살아가는 것에 크나큰 불만을 품지는 않았다.
세츠나로 살아가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으니까.
또한, 아이노 남매의 바람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세카이를 움직이게 할 사건이 일어날지는 미지수지만.-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었다.
몸이 상당히 따뜻하다. 인간의 체온에 맞췄다.
스킨십을 좋아하는 세츠나를 위해 설정된 것.
| 아이노 세츠나? |
너무 짧게 져버린, 안타까운 찰나.
아이노 세츠나는 살아있지 않다.
세카이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미 시한부를 선고받았던 세츠나였다.
애초에 세츠나에게 기적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 과거사 |
01.
「삐익. BS-20220121, 가동 준비 완료.」
기계음이 짧게 울린다. 대중들에게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안드로이드는 저의 집에서 눈을 뜬다.
왼쪽 눈은 붉게, 오른쪽은 푸르게 반짝이는 눈을 두어번 깜빡이며 주위를 살핀다. 제법 부유한 집안의 거실에 있음을 인식한다.
그리고 저의 앞에 있는 사람들은… 저의 어버이인 아이노 츠바사와, 앞으로 자신이 돌봐야하는 아이노 세츠나이다.
츠바 오빠, 꼭 나랑 닮아서 마치 동생 하나 생긴 기분이야!
혹시 생일 선물이 이 아이였던 거야?
소녀는 츠바사를 보고 발랄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그리 조잘거린다.
이내 고개를 돌리고 안드로이드를 본다.
마치 보물을 발견한 탐험가처럼, 붉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흥미를 내비춘다.
“안녕, 네 이름은 뭐야?”
“...BS-20220121라고 해, 아이노.”
“우와, 세츠나 이름도 아는 거야? 그렇다면 세츠나로 불러줘.
츠바 오빠랑 헷갈릴 거 아니야! 어쨌든, 그런 건 이름보다는 코드에 가깝잖아. 부르기 어려워~”
“...그렇다면 숫자 몇개만 따다 부르면 되지 않을까, 세츠나.”
“정감 안 가, 그렇다면 세츠나가 지어줄게! 음음, ...보쿠노 세카이 어떨까!”
세츠나는 그리 말하고 안드로이드를 끌어안았다.
소녀는 실제 사람같은 따뜻함을 느끼고 맑게 웃었다.
“있잖아, 세카이는 앞으로 세츠나의 남은 삶동안 뭐든 되어줄 거잖아?
오빠한테 들었거든. 세츠나의 간호인도, 동생도, 그리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을 단짝도. 세카이가 되어줄 거라고!
츠바 오빠가 세츠나의 날개가 되어줬다면, 세카이는 세츠나의 세계가 되어주는 거야.
그러니 이것저것 더 알아갈 수 있는, 나의 세계(僕の世界)로.”
“...응, 나 잘 해볼게. ...그러기 위해 네 앞에 존재하는 거고.”
제멋대로 저의 이름을 확정짓는 세츠나를 보고, 세카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말괄량이를 맡게 된 기분이 들었다만, 뭐 어떤가. 잘 지내보면 되겠지.
세츠나가 2년 후에는 죽는다는 사실은 이미 프로그래밍 됐을 당시부터 알고 있었기에 조금은 안타까웠다만.
...그래도 그 2년 동안 최선을 다해 헌신해야했다.
그것이 저, 이제는 보쿠노 세카이라는 이름을 갖게된 자의 태어난 이유였으니.
그 이후에는 츠바사를 위로해야 할 것이고. ...분명 잘할 수 있을 거야.
“안녕, 세츠나. 당신의 세계에 걸맞는 훌륭한 안드로이드가 되어줄게.”
02.
2년이란 세월은 제법 빨리 흘렀다. 그동안 참 많은 일을 겪었다.
마지막이라는 이유로 인형 박람회도 가보고, 바다에도 가보고, 여러 추억을 쌓았다. 정이 쌓여갔다.
세츠나는 생각보다 세카이에게 깊게 박혔다.
이렇게까지 세츠나를 사랑할 생각은 없었는데, 이미 떠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세츠나를 떠나보낼 자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떠나보내줘야 하는 것이 맞겠지.
세카이는 녹음기를 꺼내들었다.
자신은 안드로이드이기에 기억을 잊을 일이 없었지만, 그래도 따로 녹음해놓을 필요가 있었다.
사람을 잊을 때는 목소리부터 잊힌다고 했으니. 세카이는 세츠나의 옆을 계속 지켜봤다.
심장박동이 옅게 뛰는 세츠나가, 곤히 잠들었다. 깨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 정도였다.
그런 생각을 하며, 세카이는 세츠나를 보고 한숨을 옅게 쉬었다. ...그때였다.
“...우응, 세카이?”
“...세츠나?”
“헤헤, 계속 옆에 있어줬네? ...다행이야. 세카이가 마지막까지 있어줘서. 오빠는?”
“...잠깐 자리를 비웠어. 급한 전화가 와서..”
“...그렇다면 세카이가, 전해줄 수 있어?”
“...무엇을?”
세츠나의 눈이 기적적으로 떠졌다.
말을 내뱉는 행위마저 이제 세츠나에게는 버거웠기에, 미간이 잔뜩 구겨졌지만, 세츠나는 웃으려고 했다.
세카이는 직감했다.
이것은 정말 마지막이구나. 그녀는 녹음기의 전원을 켰다.
“...세츠나도 어떻게든 버티려 했는데, ...이젠, 정말 무리일 거 같아. ...어떻게든 살고 싶었는데. ...미안.”
“...아니야, 세츠나는 노력했잖아.”
“...그런가? ...사실 지금도 천사님들이 날 데려가려던 꿈을 꿨다가, 겨우 깨어났거든. ...아직 못한 말들이 있어서.”
“...잘 들어줄게, 너무 무리는 하지말고.”
“응, 고마워. ...있지, 오빠한테는 나 없이도 잘 지내달라고 전해줄 수 있어?
세츠나는, 츠바 오빠가 너무 걱정돼. ...너무 다정한 사람이잖아. ...부모님께도 말씀 전해주고. ...그리고 세츠나.”
“...응.”
“...나를 잊지 말아줘. 늘 나의 세계로 남아줘. 내가 추상적인 존재로도 살아 숨쉴 수 있게 도와줘.
...애초에 시한부 환자가 하기에는 이기적인 말이지만, 정말 살고 싶어. 어떻게든.”
“...세츠나를 잊을 리가 없잖아. ...너를 위해서라면 뭐든 해줄 수 있어.”
“...헤헤, 고마워. ...내 인생에 2년밖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너는 여태까지의 삶보다 더 가치있는, ...나만의 세계였어. ...세카이를 만날 수 있어서, 난…”
그녀의 심장박동을 알리던 화면이 0을 띄운다.
말하는 내내 숨쉬기가 어려워 보였는데 정말로 그녀의 숨이 끊겼다.
세츠나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세카이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안드로이드이기에 웬만하면 눈물을 흘리는 일이 제한되어 있었는데, 그 상한점을 넘긴 슬픔이었다.
세츠나가 죽었기에, 병원 사람들을 불러야 했지만 그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옆에서 세카이는 조용히 읊조렸다.
“...당신을 만날 수 있기에 행복했어. ...잘 자, 찰나에 사랑을 심어줬던 사람아.”
03.
장례를 치뤘다. 모든 언론을 차단했다.
세츠나가 죽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가족 같이 친밀한 사람밖에 남지 않았다.
누구보다 밝았던 아이를 그리 떠나보내자 세카이와 츠바사의 사이도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그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세카이는 태엽이 다 돌아간 인형처럼 힘없이 저의 자리에 앉아있었다.
세츠나는 이렇게 무기력한 자신을 보고 싶지 않을 것을, 잘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 시간이 흐른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세카이.”
“...츠바사, 왜?”
“...아이노 세츠나로 살아가줄 수 있어?”
“...그래도 괜찮겠어?”
거절대신 다시 묻는다.
정말 내가 세츠나로 살아가도 되겠어? 애초에 세카이는 거절할 생각이 없었기에, 츠바사의 의사를 다시 물었다.
본래 세카이는 아이노 남매를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존재이니까.
설령 그것이 옳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갉아먹게 되더라도.
“...네가 세츠나를 제일 잘 알잖아. 제일 닮았고. ...그러니 부탁이야.”
“...그걸로 네 기분이 나아지겠어?”
“...응.”
“...그렇다면 얼마든지. ...날 좀 손볼 필요는 있겠지만.”
세카이가 봐온 츠바사는 상처를 주며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가 그러는 것은, 그 역시 무너지고 있기에 어디에든 매달리고 싶은 것이겠지.
누가봐도 아이노 남매는 유별나게 서로를 아꼈고. 세카이는 옅게 미소지으며 츠바사의 부탁을 들어줬다.
그녀는 원래 그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게끔 만들어졌으니.
...또한 자신의 존재를 지우면서 세츠나를 다시 이 세상에 살린다면,
...세츠나는 다시 이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츠나를 다시 기억해줄 것이다.
내가 지워지면 어때.
...이걸로 나는 행복할 거야.
이 관계의 끝이 어떻게 날지는 모르고, 지금까지 와서도 불안하지만.
난 너에게 더 이상 바랄게 없어
나로 인해 채워지는 널 본다면
꺼내줄 수 있어 다 가져가 주겠니
사랑이 장난이면 가차 없이 날 이용해
Block B - TOY
아이노 츠바사 / 저를 만들어준 어버이 같은 존재, 이지만...
“...츠바사? 좋은 사람이지. 그는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 헌신했어.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장본인이고.
그렇기에 나는 그를 위해 뭐든 하고, 그 역시 ‘세츠나'의 모습을 한 나를 위해서라면 뭐든 하겠지.
다만 ‘세카이'가 아플 때는 그가 곁에 있었을까. ...나는 확신이 안 서. ...어디서부터 이리 된 걸까.
예전에는 세카이, 세츠나, 츠바사. 이 셋으로, 나도 존재하면서 전부 행복할 수 있었는데.
...뭐 그렇다고 해서 이걸 엎을 생각은 없어. 나는 세츠나와 츠바사의 선택을 따를 수밖에 없고 이를 존중해.
세츠나의 삶을 사는 것도 마냥 나쁘지는 않아. 이대로 세츠나와 츠바사의 세계로 남는 것도,
안드로이드가 주인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일 테니까-”
여자는 애써 미소지었다.
여자에게 있어서 그는 날개였다. 세상에 나아가게 한 넓은 날개.
이제는 그게 무너져서, 완전히 추락하는 기분이 들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같이 떨어져줘야지. 그것이 여자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이자, 여자가 동의한 비극이었으니.
너는 내 통증의 처음과 끝,
너는 비극의 동의어이며,
/서덕준, 상사화 꽃말